순수에서 구조로: 토스에서 배운 성장의 문법

2025.04.29

business
토스의 초기는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고객 앞에서 모든 결정을 하자.” 당시에 토스가 만들어낸 혁신은 기능의 복잡성이 아니라 감각의 단순함에서 비롯되었다. 버튼의 언어, 흐름의 마찰, 대기의 불안—고객이 느끼는 불편을 UI/UX의 완결도로 지워나가며 기존 금융의 관행을 흔들었다. 다른 플레이어들이 규제, 레거시, 이해관계를 동시에 헤아려야 했다면, 토스는 오로지 사용자의 손끝에 무엇이 닿는지를 먼저 물었다. 이 선택은 기성 시장에 대한 도전이자, 사용자 관점에서 상식의 회복이었다.
 
그러나 회사가 성장한다는 것은 단순함이 복잡함을 이기는 시대가 끝났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상장과 매출 압박, 사업 포트폴리오의 다변화, 규제와 리스크 관리는 ‘고객 중심’을 하나의 신념이 아니라 운영 가능한 체계로 변환할 것을 요구한다. 사용자에게 아름다운 경험을 주는 것만으로는 지속 가능성이 보장되지 않는다. EBITDA, CAC 회수 기간, 유닛 이코노믹스 같은 단어들이 중요해지면서, 의사결정의 중심에 점차 고객보다 ‘회사의 생존’이 들어온다. 이때 많은 조직이 겪는 딜레마는 명확하다. 어떻게 ‘사용자 중심’과 ‘사업 지속성’을 동시에 만족시킬 것인가.
 
이 변화는 토스가 변질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관점의 해상도가 높아졌다는 신호에 가깝다. 어린아이처럼 ‘왜 이렇게 복잡하게 하지?’라고 물으며 속도를 최대로 끌어올리던 시기에서, 어른처럼 ‘복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소위 말해 어른들의 사정)를 다루는 단계로 넘어온 것이다. 규제 준수, 보안, 파트너십 구조, 다각화된 수익 모델(커머스, 통신사업 등)—이 모든 것이 고객 체감 가치와 무관하지 않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층에서 안전과 신뢰를 지탱하며 경험의 바닥을 단단히 다지는 역할을 한다. 문제는 그 복잡성이 전면으로 올라와 고객이 체감하는 직관성과 단순성을 침식하는 순간이다. 성숙으로 위장한 관료화가 시작되는 시점, 고객의 목소리는 KPI의 소음 속에서 작아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사용자(고객) 중심’의 재정의, 즉 고객을 감동시키는 미학에서 고객을 보호하고 시간을 절약시키는 운영적 실용성으로의 확장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 대시보드를 동시에 봐야 한다. 첫째, 사용자 대시보드—재방문 유지율, 문제 해결까지의 시간, 불만/이탈 사유, NPS와 같은 고객의 시간, 불안, 노력을 줄였는지의 지표. 둘째, 비즈니스 대시보드—기여이익, 유닛 이코노믹스, 리스크 비용, 규제 준수 비용 등 생존과 확장을 판별하는 지표. 한쪽만 보면 방향 감각을 잃는다. 두 대시보드를 함께 보되, 이 두가지 가치가 충돌할 때의 우선순위 규칙을 조직 내에서 합의해두어야 한다. 예컨대 ‘고객의 신뢰와 안전에 관한 의사결정은 단기 매출을 이긴다’는 식의 컨센서스를 갖는 것이 그것이다.
 
또 하나의 축은 exploration과 exploitation의 분리다. 초기처럼 모든 팀이 동시에 달리면 실행력은 높아지지만, 성숙기에 들어서면 리스크와 기회 비용이 급증한다. 반대로 모든 것을 안정화하면 시장 감각이 무뎌진다. 해결책은 이중 운영체계다. 핵심 수익을 담당하는 조직은 효율, 예측가능성, 컴플라이언스를 중심으로 움직이고(team), 신사업과 실험 영역은 고객 문제 탐색과 빠른 폐기를 원칙으로 독립된 속도를 유지한다(a.k.a ‘silo’ in Toss). 이때 중요한 것은 탐험의 성공이 아니라 탐험의 학습 속도이며, 그 학습이 실행 조직의 로드맵으로 체계적으로 흘러 들어가도록 하는 번역 장치다.
 
UI/UX의 역할도 달라진다. 초기에 UX는 ‘예쁨과 단순함’으로 해석되었다면, 이젠 규모의 복잡성을 숨기는 건축적 역할을 해야 한다. 동일한 버튼과 플로우 뒤에 세분화된 리스크 정책, 차등 요율, 파트너별 예외가 존재하더라도 사용자에게는 일관된 규칙과 예측 가능한 결과만 보이게 해야 한다. 즉, 디자인은 ‘표면의 미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규칙의 설계’로 진화한다. 이 전환을 실패하면 고객은 복잡함을 체감하고, 성공하면 고객은 복잡함의 존재조차 모른다.
 
여기에서 다시 초심이 필요하다. 초심을 ‘순진함’이 아니라 가설 검증의 태도로 재해석하는 일이다. 초기는 무조건적 성장과 사용자 중심 사고가 무기였지만, 지금은 사용자의 문제를 돈의 언어로 번역하고, 돈의 제약을 사용자의 언어로 다시 번역하는 양방향 능력이 필요하다. 고객이 기꺼이 지불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그 가치를 제공하는 데 드는 비용과 리스크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 차이가 꾸준한 현금흐름으로 연결되는지를 끊임없이 실험하고 합리화해야 한다. 이는 고객을 포기하는 길이 아니라, 고객 중심을 운영 가능한 경제학으로 승격시키는 일이다.
 
결국 토스의 다음 장은 이렇게 정리된다. 초기의 순수는 방향을 주었고, 지금의 구조는 지속성을 준다. 성장은 이 둘 사이의 왕복 운동이다. 아이의 질문—’왜 이렇게 복잡하지?’—을 잃지 않되, 어른의 해답—’그래도 단순하게 느껴지게 만들자’—을 실행으로 보여주는 것. 고객의 시간과 불안을 줄이는 일이 곧 회사의 이익과 리스크를 관리하는 일로 귀결되도록 조직의 문법을 고도화할 때, 토스는 초심을 잃지 않고도 어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우리는 말할 수 있지 않을까. 고객 중심은 사라지지 않았다. 더 어려운 형태로 진화했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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