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가와 예술가

창업가와 예술가

2025.08.28

life
 
 
나에게 일과 정체성을 관통하는 오랜 주제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가치를 널리, 반복하여 확산시키는’ 창업가의 원형과, ‘가치를 깊고 유일하게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예술가의 원형 사이에서의 나에 대한 생각일 것이다.
창업가의 페르소나는 시장의 언어로 말한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검증된 데이터를 신뢰하며, 지속 가능한 모델을 통해 더 많은 사람에게 효율적으로 가치를 전달하는 방법을 고민한다. 이 세상에서는 '확장성'과 '재현성’이 중요한 미덕이다.
반면, 예술가의 페르소나는 내면의 언어에 귀 기울인다. 세상에 없던 표현을 탐구하고, 본질에 닿기 위해 기꺼이 비효율을 감수하며, 단 한 사람의 마음에라도 깊은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진정성'과 '고유성'을 추구한다.
이 두 힘의 비중을 어떻게 조율할 것인지, 지금 내가 하는 일의 본질과 단계에 따라 어디에 무게 중심을 두어야 할지를 꾸준히 고민한다. 창업가의 시선으로 세상의 필요를 읽고, 예술가의 마음으로 그 해답에 영혼을 불어넣는 여정. 내 안에서 끊임없이 서로를 견제하고 보완하며 나를 성장시키는 두 개의 강력한 축이다.
 
 

출발점이 다른 두 길

창업가와 예술가는 모두 무(無)에서 유(有)를 만든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같다. 다만 출발점이 다르다.
창업가는 바깥의 고객 문제를 포착하며 시장의 언어로 사고한다. 시스템을 세우고, 검증 가능한 데이터에 기대며, 확장성재현성을 미덕으로 삼는다.
반대로 예술가는 안쪽의 목소리에서 출발해 표현의 언어로 탐구한다. 비효율을 감수하더라도 단 한 사람에게 오래 남는 진정성고유성을 기준으로 삼는다. 표면적으로는 한쪽이 넓히고 다른 쪽이 깊게 파는 듯 보이지만, 두 힘은 경쟁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 장력이다. 고유성이 없는 확장은 메시지가 비어 있고, 확장이 없는 고유성은 영향력이 갇힌다.
그래서 좋은 작업은 두 루프가 교차한다. 창업가적 루프(=문제정의 → 가설 → 실험 → 피드백 → 조정)가 수요를 검증하고 배포의 길을 넓히는 동안, 예술가적 루프(=탐구 → 응축 → 형식화 → 감응 → 해석)가 의미의 두께를 보강한다. 척도 또한 이중이다. 매출, 전환율, 유지율 같은 시장의 눈금이 실행을 바로잡고, 미학, 완결성, 담론, 감응 같은 예술의 눈금이 방향을 보정한다. 리스크 관리 방식 역시 다르되 호응한다. 창업가적 접근은 실패를 분산해 속도를 높이고, 예술가적 접근은 실패를 감내해 언어를 정직하게 만든다.
결국 지속성은 양극을 왕복하는 조율 능력에서 나온다. 상황과 단계에 따라 scale과 uniqueness의 페이더를 달리 올리고 내리며, 때로는 숫자가 말해 주지 않는 공허를 채우기 위해 고유성 쪽으로, 때로는 아름다우나 닿지 못하는 답답함을 풀기 위해 확장성 쪽으로 전환한다. 요컨대, 창업가는 “더 많은 사람에게 어떻게”를, 예술가는 “왜 지금 이것인가”를 밀어 올리고, 이 두 질문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작업은 멀리 닿고 오래 남는다.
 
 

무엇을 최적화 할 것인가: Scale인가 Uniqueness인가.

결정의 순간마다 던져야 하는 질문은 단순하다. ‘지금은 스케일을 최적화할 시간인가, 유니크니스를 최적화할 시간인가?’
스케일을 선택하면 사업적 지표와 유통 채널, 가격과 운영 같은 구체적 요소들이 또렷하게 드러난다. 빠른 실험과 피드백의 순환을 통해 위험을 분산시키며, 속도를 곧 학습의 밀도로 전환한다. 반대로 유니크니스를 선택하면 작업의 무게 중심이 세계관과 형식, 몰입으로 옮겨 간다. 피드백은 느리지만 깊고, 때로는 단 한 번의 도약이 전체 방향을 바꾸는 힘을 갖는다. 결과의 내구성은 바로 이 의미의 두께에서 나온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를 동시에 붙잡으려 애쓰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둘 다’라는 태도는 결국 모호함만 남긴다. 올바른 태도는 상황별로 한쪽을 명확히 선택한 뒤, 시점이 바뀌면 반대편으로 이동해 루프를 닫는 일이다. 속도와 두께는 교대로 숨을 쉬듯 번갈아 일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이 왕복 운동이야말로 지속성을 만드는 진짜 동력이다.
 
 

두 개의 눈금으로 성과를 읽기

  • 시장 눈금: 매출·성장·유지율·만족도—“살 것인가 말 것인가”의 냉정한 척도.
  • 예술 눈금: 미학·완결성·담론·감응—“무엇이 남았는가”의 깊은 척도.
제품이 흔들릴 때는 시장의 눈금이, 방향이 공허할 때는 예술의 눈금이 유효하다. 한쪽 척도만 고집할수록 오판의 확률은 커진다. 두 눈을 함께 뜰 때 원근이 맞는다.
 
 

실패를 다루는 두 방식

실패는 분기점이다.
  • 실험 노트에는 가설–변수–결과–교훈을 기록한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 창작 일지에는 의도–망설임–해석–감응을 기록한다. 같은 얕음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앞의 노트는 다음 주의 실험을, 뒤의 일지는 다음 문장을 낳는다. 방향이 깊어질수록 속도는 흔들림이 줄고, 속도가 붙을수록 방향은 쉽게 흔해지지 않는다.
 
 

전환의 신호를 읽는 법

장력의 균형이 무너질 때는 징후가 먼저 온다.
  • 반응은 있는데 매출이 없다 → 문제정의·가격·유통 채널을 재설계.
  • 지표는 오르는데 공허하다 → 세계관·핵심경험을 재정의, ‘하지 않을 것’ 리스트 정리.
  • 요청이 산만해 본질이 흐린다 → 형식과 경계를 정비.
  • 작품은 좋은데 묻힌다 → 포지셔닝·콜라보·배포 시스템 설계.
몇 줄의 규칙이 모드 스위치를 눌러 준다. 무한 질주 대신 의도적 전환이 체력을 지킨다.
 
 

페이더의 은유

일의 앞에는 늘 두 개의 페이더가 놓여 있다. 한쪽은 스케일, 다른 한쪽은 고유성.
아이디에이션·초기 검증·성장·재정의 등 단계마다, 팀의 컨디션과 자원의 제약마다 페이더의 위치는 달라져야 한다. 숫자가 설명하지 못하는 공허, 혹은 아름답지만 닿지 못하는 답답함이 생길 때는 과감한 교차가 필요하다. 전환은 위험하지만, 정체는 더 큰 위험이다.
 
 

경계를 허무는 스승들

위대한 창업가는 예술가의 감수성으로 형식을 갱신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사업가의 수완으로 유통을 설계한다.
따라서 배움은 양방향이다.
  • 예술가에게서: 진정성, 불필요의 덜어냄, 세계관의 치밀함.
  • 창업가에게서: 수요 검증, 반복 가능한 제작 습관, 배포 전략.
경계를 넘나드는 안목이 결과의 두께를 만든다.
 
 

다음 분기에 적용해볼 네 가지 실천안

  1. 핵심 경험 하나를 명명하고, 주변 유혹은 보류한다. (선택과 집중)
  1. 매주 실험 1개를 시스템에 고정한다. 가격·메시지·채널 중 최소 하나. (속도의 훈련)
  1. 배포 달력을 도입해 작품 or 제품(or 글)의 리듬을 분리한다. (충돌 최소화)
  1. 두 종의 메트릭을 함께 본다. 시장(e.g. 전환율)과 감응(e.g. 의미 있는 피드백 수). (양안 시력)
원칙은 목표가 아니라 습관의 설계도여야 한다. 습관이 전략을 이긴다.
 
 

자가 점검 질문 6

  1. 오늘의 목적함수는 Scale인가, Uniqueness인가?
  1. 의사결정의 근거는 데이터인가, 미학/철학인가?
  1. 리스크는 분산하고 있는가, 감내하고 있는가?
  1. 성공을 지표로 읽는가, 감응으로 읽는가?
  1. 우선 제약은 시장/법/운영인가, 진정성/맥락인가?
  1. 다음 행동은 실험/출시인가, 연구/몰입인가?
답이 한쪽으로 기울수록 반대의 사고를 할 수 있는 시간을 즉시 잡는 편이 좋다. 불균형은 실패가 아니라 전환의 신호다.
 
 

사이에 서는 법

창업은 시장이라는 캔버스에 비즈니스 모델이라는 물감으로 그리는 행위다.
예술은 내면이라는 시장에서 작품이라는 제품을 빚는 행위다.
일과 삶은 그 사이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날은 더 멀리 닿게, 어떤 날은 더 깊이 남게. 중요한 것은 매일의 페이더 앞에서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태도다.
 
널리·반복과 깊고·유일 사이. 그 사이에 서 있을 때,
세계관은 선명해지고, 임팩트는 축적된다.
 
공유하기